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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현욱

 

겹겹이 스며들어 번진 중첩은 두께가 아닌 깊이의 쌓임을 만들어내며 사라진 것 같지만 사라지지 않은 흔적으로 드러난다. 이렇게 한지에 스민 먹과 안료들은 현실 속에 잠들어있던 또 다른 감각들을 깨우며 세계에 대한 호기심을 지속적으로 재촉한다. 나는 지금 이 스며듬의 겹을 통해 빛나는 가시성을 벗어나 그늘진 어둠 속에 감춰져 있던 틈새의 그림자들을 발견하며 자신이 세상을 바라보고 이해하는 관점과 교차점을 만들어나간다. 

 

현재 진행 중인 작업은 익숙함의 경계가 허물어지며 드러나는 가시적 세계의 이면 경관, 자신이 ‘그늘의 세계’라고 여기는 경관을 그리는 것이다. 경험으로 축적된 세상의 잔여물들이 드러나는 이 세계는 빛이 머물다 물러간 자리, 혹은 절대적 기준으로 여겨지던 빛이 그 지위를 잃고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장소다. 비록 우리의 기억은 빛의 잔재에 강하게 사로잡혀 있지만, 이 익숙한 생경함에서 발견되는 질문들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들여다본다면 견고히 만들어진 이미지의 틀에서 벗어나 비로소 우리의 상상이 실현될 수 있다. 

 

우리는 세상을 이분법적으로 분리해서 바라보는 것에 익숙해져 있다. 우리 주변을 비추는 빛과 그 이면의 어둠을 있는 것과 없는 것으로 구분 짓게 되면 그 경계 안에 갇힌 사고를 만들어 내게 된다. 그렇지만 우리는 이러한 경계를 허무는 행위를 시작으로 어떠한 가능성을 획득하게 되는데, 나는 이것에 충실할 수 있는 스며듬의 중첩이 있는 그리기를 통해 빛으로 충만한 세계의 이면은 어둠의 그늘을 통해서 드러난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밤의 그늘과 대기권 너머에 항상 존재했지만 잊힌 세상을 매개로 그것을 그려보고자 한다.

 

작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밤길은 빛이 사라진 어둠 속 세상의 시작이었다. 이 경관은 빛으로 가득한 낮과는 또 다른 충만함으로 다가왔고 익숙했던 공간들은 빛의 부재 속에서 기존에 발견할 수 없었던 새로운 모습을 드러냈다. 마치 빛이 물러난 그늘의 시간 속에서 비로소 모습을 드러내는 대기 너머의 별빛처럼 말이다. 그리고 어느 날 우연한 기회로 들여다본 거대한 천체 망원경의 렌즈 속에서 빛의 산란으로 가려져 있던 대기권 너머의 세상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이것은 항상 우리 곁에 존재했지만 익숙함으로 잊힌 세상이 다시 돌아온 순간이다.

 

위 경험들은 자신을 ‘어둠이 무엇일까’라는 질문으로 이끌었으며 나는 현재 그 틈새를 들여다보고 있다. 이 틈에서 새어 들어온 빛줄기는 시각이 아닌 사고의 시선을 밝히는데 이로 인해 어둠은 비로소 빛이 사라진, 또는 흑막의 시공간적 개념을 벗어나 나를 지배하던 고정관념의 이면을 드러내는 어떤 흔적이 되어간다. 그리고 이렇게 와닿은 세상은 서로가 개별적인 관계성으로 분리되어 있다기보다는 서로를 드나드는 열린 관계 속에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한다. 

 

이렇듯 그늘의 영역은 어떤 새로운 가능성의 틈을 알린다. 대상과 자신의 경계를 허물며 서로의 구분됨, 또는 정반의 대립을 의미 없게 변화시키는 것이다. 나는 이러한 가능성의 틈에 대한 징후를 작업 속에서 드러내고 있는데, 묘사된 대상과 대상 사이에 비워진 얇은 여백이 그것이다. 이것은 얼핏 보면 마치 흰 선과 같아 보이지만 그려낸 선이 아니라 비워진 틈새다. 대상 사이에 이러한 여백의 틈을 내어주는 것은 서로의 대면이 이루어지는 조건으로 발동될 수 있다. 서로 맞닿거나 채워져 그려지기보다는 그사이를 비워둠으로써 서로가 교감할 가능성을 남겨두는 것이다. 

 

이것(사이-틈)은 어떤 ‘여백’에 대한 표현이기도 하다. 나의 이러한 주장에 대해 한편으로는 기존의 동양화나 한국화에서 말하는 여백의 개념에 대한 사념으로 치부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변해가는 우리 시대의 여백은 점점 좁혀지고 가늘어지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 세분되고 화려한 의미들이 만들어지며 우리의 메울 수 없는 균열을 뒤덮고 있는 동시대의 시대상은 대상을 관망할 여유조차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이러한 현실의 여백은 과연 어떻게 존재하고 드러날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한다. 태도는 언제나 가능성을 품고 있다. ‘그리기’는 태도가 되어 포섭되지 않고 변신해야 한다.

 

We are used to seeing the world in dichotomy. However, if we divide the light that shines around us and the darkness behind it into what is existing and what is not, we create a thought trapped within that boundary. Starting with the act of breaking down these boundaries, certain possibilities can be acquired. Through “painting with permeable overlapping,” I want to say that the other side of this world full of light is revealed through the shadows. And I would like to express it through the shadow of the night and the world that has always existed beyond the atmosphere but has been forgotten. 

 

The night walks back home from the studio was the beginning of a world in the shadow where the light had disappeared. This scenery came to me with a different fullness from the daytime full of light. Familiar places revealed a new look that could not be discovered before, like starlight that only appears in the time of the shadows when the light has receded. And one day by chance, through the lens of a giant astronomical telescope, I saw the world beyond the atmosphere, which was hidden by scattering of light. This was also the moment when the world that had always existed with us but had been forgotten came back. To express this, I paint in a way that ink and color pigments are layered and permeated on Korean paper. Such paintings reveal the overlap of materials as traces rather than volume. The limitations of flat two-dimensional rather than clear and stint three-dimensional enable us to imagine crossing the boundaries of familiar perceptions and make constant transformation possible.

 

The above experiences led to questions such as “Is the boundary between light and shade a distinction or a beginning of a door opening?” In doing so, I created a narrow gap in the stereotypes that have been solidified over the years. A ray of light leaking through this gap illuminated thinking, not vision. Now, darkness escapes from the concept of space and time in darkness and becomes a trace that reveals the other side of the stereotypes that dominated me. And the world touched in this way makes us think that we are in an open, interactive relationship with each other rather than being separated by individual relationship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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