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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술원 철창 앞에서

 

 어둔 밤에는 빛으로 향하지 않는다. 더 어두운 곳으로, 더 깊이, 도대체 어떤 것이 있을지 상상조차 못 할 곳으로 시선을 옮긴다. 철창 너머에는 그 어둠이 있다. 그곳으로 가고픈 나의 의지를 무심한 철창이 가로막고 서 있다. 지금은 너무 많은 것을 알아버렸다. 이전이었다면, 내가 좀 더 아는 것이 없었을 때라면 나는 벌써 철창을 타고 넘으려 했을 것이다. 분명히 그 너머에 있는 숲속의 어둠으로 기어들어 갔을 것이다. 철창의 길이는 수백 미터이지만 두께는 불과 1cm도 되지 않는다. 어찌 보면 웃음이 난다. 이 얇고 허술한, 심지어 발을 넣어 타고 올라가기에 전혀 불편함이 없을 이 철창이 무어라고 나는 이것조차 선뜻 넘어가지 못하는 것일까. 

 

 저 수풀 속 어둠으로 간다. 몸을 숙이고 두 팔로 울창한 수풀을 해치며 빛이 아직 닿지 못한 곳으로 발을 디딘다. 뭐가 나올지도 모르고 어떤 땅이 나타날지도 모르는,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이곳에서의 어설픈 발걸음은 만약 내가 GPS 장치를 달고 있다면 외부적 시선으로 봤을 때 정말 의미 없는 동선을 보여줄 것이다. 실시간으로 확인 가능한 그 표면적 몸짓의 결과는 내가 이곳에서 어떤 짓을 해도 의미 없는 이상한 결과물처럼 보일 것이다. 하지만 이 좁은 반경에서의 몸짓은 정작 그 어둠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당사자에게는 어떤 경험보다 끝없는 세계를 경험하게 해줄 것이다. 

 

 잠시 그 어둠 속에서 웅크리고 앉아보자. 두려움은 찰나로, 어색함은 이내 잦아들고 점점 어둠이 그 속내를 드러낸다. 하지만 ‘칠흑 같은 검은색’과는 다르다. 이것은 우리가 만들어낸 환상이고 그런 어둠은 작정한 목적으로 만든 인위적 공간이거나 지어낸 의미 속에서 존재한다. 이것은 내가 말하는 어둠이 아니다. 이처럼 어느 하나의 완벽한 부재에서 오는 빛과 어둠은 생명력이 없는, 정말로 죽어버린 공간. 어떤 가능성도, 어떤 틈도, 어떤 열림도 없는 빛과 어둠은 오로지 죽음으로만 향해 있을 뿐이다. 이 죽음이 가능한 곳은 우리가 만들어낸 의미 속에서만 존재한다. 그렇지만 서서히 들어오는 어둠의 이면은 은은한 달빛이 수풀과 땅에 닿을 때 비로소 나에게 스며들며 나타난다. 이것은 생명력을 가진 ‘흐름’으로, 어둠을 향한 호기심과 같다. 

 

 스며드는 물줄기와 같이 철창 너머의 어둠에는 틈이 있다. 그리고 그곳으로 새어 들어온 달빛으로 몸과 사고를 밝힌다. 이렇게 드러난 어둠은 결국 빛과 함께 있으며 그곳에서 나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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