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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의 모습

 내게 그림을 그리는 것은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수많은 허상과 사실이 뒤섞여 있다. 현실에서 쌓인 경험들은 과거, 현재, 미래로 연결된다. 이러한 연결은 순차적이지 않고 뒤섞여 있는 덩어리에 가깝다. 이렇게 덩어리진 이야기 안에는 파편적 이야기들이 모여 있다. 이것은 모두 온전하거나 분명하지 않고 언제나 변주, 변화, 변신할 수 있는 틈이 있다. 때론 그렇지 않다고 스스로 믿을 수 있지만, 결국 시간이 지나 다른 이야기를 만나면 그 믿음 또한 흐릿해지며 다른 이야기로 퍼져나간다. 

 

 이야기의 모습을 떠올려본다. 다소 멀리서 바라볼 땐 다양한 형태의 조각들이 모여 있는 어떤 덩어리로 보일 것이다. 이번엔 좀 더 다가가 그것을 살펴보자. 덩어리의 조각들은 빈틈없이 완벽하게 붙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사이 사이에 틈을 가지고 모여 있다. 여기서 더 확대해 하나의 조각을 들여다보면 그 안을 또 다른 조각들이 마찬가지로 틈을 사이에 두고 모여 있다. 이 조각들은 서로 각기 다른 형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처음부터 딱 맞을 수는 없다. 하지만 이 사이에는 앞서 말한 대로 틈이라는 공백이 있기 때문에 유연하고 미묘하게 변화를 만들어 낸다. 서로의 관계를 구분 짓는 것이 아니라 언제든 변주될 수 있는 가능성을 두고 있는 것이다. 변화하여 변주되고 변신할 수 있는 틈, 이것을 나는 여백이라 생각한다. 

  

 한편으로 이 여백은 비어 있는 공간으로 보이지만 좀 더 확장해 생각해보면 아직 명명되지 않은 수많은 변주의 가능성 그 자체이기 때문에 공허가 아닌 어떤 가득함으로도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전통적인 동양화의 접근법을 변모하며 진행해온 내 작업의 요점 중 하나는 채워짐과 비워짐의 관계를 재설정하는 것이었다. 여백을 시각적으로 비워진 공간으로 표현하고 이것을 통해 보는 사람의 사유가 확장되도록 하는 것은 동양 회화의 한 요소였다. 그렇기에 이것은 그저 텅 비어있는 것이 아닌 어떤 것으로도 연결될 수 있는, 아직 뚜렷하지 않은 의문들이 가득한 것을 드러내는 표현이라 할 수 있다. 만약 이처럼 여백이 어떠한 것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이라면, 이 가득한 여백은 내가 그림으로 채워도 결국은 끊임없이 채워지지 않는 결과가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니냐는 생각을 해본다. 그래서 ‘나는 과연 이것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으로 이어지는 것, 이것이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고 그 방식과 수단이 나에게는 그리는 행위이다.

 

 뚜렷한 것은 틈이 없고 명료한 것은 지루하다. 직선적이고 매끈한 것은 차갑게 식어있다. 반면 흐릿한 것은 다가가고 싶고 분명하지 않은 것은 흥미진진하다. 곡선과 제 각각의 질감은ᅠ살아있다. 이것과 연결을 시도하며 이야기가 만들어 질 수 있는 단서를 찾는다. 언제든 변하고 사라질 수 있는 그런 이야기가 재미있다. 가득한 여백 속에서 찾게 되는 불명확한 연결에 두근거리며 그 모습을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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